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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주일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한때는 ‘만국성서주일’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 성서주일이 지켜진 것은 오늘날과 같이 12월 둘째 주일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성서주일은 ‘성서공회주일(Bible Society Sunday)’이란 이름으로 1899년 5월 성령강림주일에 처음 지켜졌습니다.
성서주일이 시작된 1899년은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시기여서 교회의 자립정도가 매우 미약했습니다. 성서주일을 한국에서 처음 주창한 영국성서공회 조선지부 책임자 켄뮤어씨는 모금을 통해서 조선인 스스로 성서를 보급하길 바란 것보다는 서구 기독교의 아름다운 전통,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이웃에게 성서를 보급하고자 하는 정신을 한국성도들에게도 심어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서주일은 한국교인들의 성경반포에 대한 관심 때문에 계속 발전해 갔고, ‘성서공회주일’은「신약젼셔」가 발간된 1900년을 기점으로 점차 정착되어 가고 있었습니다.「신학월보」 1920년 5월호에 실린 ‘셩셔공회쥬일’이라는 글에는 성서공회주일에 모여 성경 번역하는 사람과 성서공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남녀 매서(賣暑)와 무지한 사람 가운데 서책(성경)을 파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듣고 배우고자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자는 내용과 필요한 성경 구절을 싣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하여지면서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국내에 성경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하고 또한 전도지와 단편과 같은 전도용 성서를 많이 공급하여 기독교 성장에 큰 몫을 담당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회가 성장하고 또한 경제의 발전과 함께 해외에 성경을 공급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싶어도 성경이 없어서 읽지 못하는 세계 여러 나라에 성경을 제작하여 공급하는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979년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게 되었고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를 향한 문서선교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저희 성서공회는 국내와 해외에 성경을 무상으로 공급하기도 하지만, 해마다 100여 개의 언어로 제작된 400-500만 부의 성경을 제작하여 140여 나라에 공급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소중한 우리의 과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록 제작료를 지불받고 수출하는 것이지만 제작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어 이 성경을 저렴한 가격으로 받아가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보물과도 같은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100여 년 전 우리가 처해 있는 형편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성서공회는 성도들의 기도와 헌금으로 유지되는, 한국교회의 기관입니다. 이 기관을 통하여 전세계 성경의 15%를 공급하는, 세계에서 가장 성경을 많이 제작하는 나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엄청난 은총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이며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