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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주일은 한국교인들로 하여금 성경반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한편 헌금을 통해 반포사업에 기여하게 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1906년 성서공회주일에는 원산에 살고 있던 한 남감리교 교인이 15원을 헌금했는데, 그 돈은 그 때까지 한국인 개인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액수의 헌금으로서 정부 고관의 한 달 봉급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난한 농부의 헌금을 통해 한국교인들이 얼마나 성경반포지원에 열심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봄에 화재로 집을 잃어 농사일과 집을 짓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 농부는 성서공회에 헌금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헌금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던 그는 아내가 여름 내내 짰던 비단 두 필 중 한 필을 선교사에게 주면서 외국선교위원회(Foreign Mission Committee)와 성서공회에 똑같이 나누어주도록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은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계속하여 지켜졌습니다. 영국성서공회(BFBS)의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1925년에 즈음해서는 성서주일이 전국적으로 지켜졌으며, 성서주일을 지키는 교회의 수도 1929년에 283개 교회에서 1938년에는 312개 교회, 1940년에는 492개 교회로 증가하였습니다. 모금된 헌금도 많은 증가를 보였는데 31운동 이전에는 기껏해야 500여 엔 이던 헌금이 31운동 이후 급격히 증가하여 1920년대에는 1,000엔 이상씩 걷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