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국어 성서번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한다. 그와 함께 성서가 그 나라의 국어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흠정역(KJV)이 영문학의 기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다. 한글성경이 한글의 발전에 끼친 영향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아마 조선 글과 조선 말이 진정한 의미로 고상한 사상을 담는 그릇이 됨은 성경의 번역이 시초일 것이요, 만일 후일에 조선문학이 건설된다 하면 그 문학사의 제1 면에는 신구약의 번역이 기록될 것이외다?하는 발언은 조금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개역성경은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불멸의 금자탑과 같은 존재이다. 반세기 전에 어떻게 그렇게 우수한 번역이 나올 수 있었는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신학생 시절 성서원어를 배워서 성경원전을 서투른 솜씨로 번역해 놓고서 개역 성경과 대조를 해보면 그 시절에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번역을 할 수 있었는지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깨달은 것이 있다. ?성경은 기록할 때도 성령이 역사했지만 번역할 때도 성령이 역사했구나!?하는 것이다. 필자는 형편이 허락되는 대로 신학교육기관에서 국어를 비롯하여 기독교문학, 논문작성법 등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정확한 맞춤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를 적는 데 마땅한 일이고 또 한글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앞장서서 수고한 선배 신앙인들의 전통을 이어받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맞춤법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가운데 한 과, 그리고 성경 가운데 한 장을 택해 완전하게 외우도록 해 왔다. 국어생활 선도의 기능이 쇠퇴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개역성경에 수록된 말들 가운데 상당수가 쓰이지 않는 낡은 말이 되었고, 따라서 성경이 국어생활을 선도하던 기능은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개역성경에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들도 많아서 설교본문이 정해지면 제일 먼저 표준새번역을 참고해서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1989년에 맞춤법이 대폭 개정이 되면서 개역성경을 맞춤법의 교본으로 사용하는 일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오랜 기간 북방을 가청권으로 하는 선교방송 기구에서 봉직했는데 북한의 언어는 오래 전에 알아듣기 쉬운 것으로 통일되어 있다. 몇몇 탈북자에게 확인을 해보니 개역 성경은 무슨 고문서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이 나오기 전에 북한을 향해 성경을 읽어줄 때는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을 사용했다. 남한의 공동번역을 그들의 어문체계에 맞춰 펴낸 북한성경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남한의 방송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표준새번역이 발간되었을 때 모든 교회에서 이 성경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를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보수성과 개역 성경의 확고부동한 비중이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매우 아쉬웠다. 개역개정에 놀란 세 가지 이유 그러던 중에 개역개정 발간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반가워서 성서공회에 연락을 하니 개역개정판 감수용을 한 권 보내 주었다. 이 성경을 받고 로마서를 택해 개역 성경과 대조를 하면서 새롭게 손질된 부분을 붉은 볼펜으로 표시를 해보았다. 이렇게 하면 개역개정판과 개역의 차이가 드러나고 왜 개정을 했는지도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서를 택한 이유는 로마서가 개신교 신앙의 등뼈를 이루는 중요한 성경이기 때문이었고 새벽기도회에서 로마서를 강해하고 있기 때문에 많이 읽어 익숙하고 또 강해하는데도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세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째, 손질한 곳이 많아서 놀랐다. 로마서 첫째 면(239쪽)에서만 22군데를 손질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중에 감수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로마서에서만 727군데를 손질했음을 알게 되었다. 둘째, 손질한 곳들이 어색하지 않아 바꾸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놀랐다. 개역과 대조를 하지 않고 개역개정판만 읽으면 손질했다는 느낌이 없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다. 이는 개역개정이 우리의 현재 언어생활과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손질이 아주 우수하게 되었기 때문에 놀랐다. 문학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훈련을 시킬 때 ?이 작품에 사용된 어휘 대신에 다른 말을 넣어서 묘사가 더 생생해 지고 좋은 표현이 된다면 그렇게 해 보세요.?하는 훈련을 시킨다. 이 때 바꿀 어휘가 없다고 학생들이 두 손을 드는 작품이 기초가 탄탄한 좋은 작품이다. 개역개정을 놓고 이 작업을 해 보았다. 대치할 어휘가 별로 없다. 로마서 한 권만 이런 식으로 대조해 보는 작업도 수월하지가 않았다. 대조만 하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개정작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래서 이 일을 마치고 성서공회 실무자에게 팩스를 보내 치하와 감사를 한 일이 있었다. 문장부호나 운문을 좀 더 과감하게 사용하고 용어도 맹인 같은 것을 아예 시각장애인으로 바꿨으면 어떨까 하는 점이 아쉽지만 개역의 무드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원칙과 표준새번역 발간 때 일어났던 문제들을(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문제들이다) 돌아보면 충분히 이해를 한다. 성경 번역에 대해 말할 때는 원전을 얼마나 정확하게 번역했나 살피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이렇게 지엽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니 좀 송구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원전의 정확한 번역 문제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미 많이 언급한 것으로 안다. 개역개정 성경의 보급화를 바라며 개역개정은 아마 빠른 속도로 많은 교회에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몇 교단에서는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이 성경 사용을 의결했다고 한다.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에서는 개역개정 출간과 동시에 이 성경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로 선포했다. 그러나 아직 실제로는 사용하지 못하고 교회 행사에 상품으로 이 성경을 주고 교회 간행물에 성경을 인용할 경우 개역개정을 사용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요즘 교인들은 거의 대부분 성경과 찬송가가 합본이 된 책을 가지고 다니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아직 찬송가와 합본된 것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서공회의 몫이 아니라 기독교출판기구가 담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용기있는 기독교 출판기구가 나서서 이 일을 빨리 추진해 주었으면 한다. 또한 기존의 성구사전으로 개역개정의 성구를 찾는 데도 큰 불편은 없지만 이왕 새 성경이 나왔으니 개역개정에 맞춘 성구사전도 발간되었으면 한다. (성서한국 44권 4호)